우주 과학

갈릴레이와 케플러의 망원경

해뉘 2023. 8. 15. 16:15

갈릴레이,  첫 번째 망원경 제작

1609년 네덜란드 광학자가 만든 기구에서 영감을 받은 갈릴레이는 직접 망원경을 제작해

진정한 천문학 관측기구로 사용했다.

망원경이 이탈리아나 네덜란드에 들어온 것은 16세기 말이라고 한다. 발명자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망원경을 처음으로 언급한 사람 은 이탈리아의 작가 잠바티스타 델라 포르타로 1589년 그가 쓴 『자연 마술』이란 저서에 망원경이 나왔다. 1608년 네덜란드의 안경제조업자 한스 리퍼세이는 최초로 지상망원경(3배 배율)의 특허권을 신청하는데 이것은 네덜란드의 악기 제조인 이자 광학렌즈 연삭 전문가인 야콥 메티우스의 특허 신청보다 몇 주 앞선 것이라고 한다. 1608년 10월 야콥 메티우스는 '멀리 있는 물건을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볼 수 있는' 물건에 대한 특허권을 네덜란드 삼부회에 신청했다.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 인 르네 데카르트가 1637년 간행된 저서 『굴절광학』에서 망원경의 창시자라고 밝힌 사람은 바로 메티우스라고 한다.

 

 

1609년 5월 파도바 대학 수학 정교수였던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제자 자코모 바도에르에게 네덜란드에서 안경을 만드는 사람이 멀리 있는 물체를 잘 볼 수 있는 망원경을 만들었다는 말을 들었다. 이때 갈릴레이는 망원경을 직접 만들기 시작하는데 조금씩 배율을 개선해 나갔다. 1609년 8월 그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특히 당국에 사적 발명품의 견본을 제출했다.

산마르코 광장의 종탑 꼭대기에서 열린 시연회는 성공을 거뒀다. 갈릴레이는 이 망원경에 대한 권리를 베네치아에 넘기는데 공화국은 군용으로 활용하고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 대가로 갈릴레이는 파도바 대학의 종신교수직을 확약 받고 봉급을 2배 올려 받았다.

 

1609년 11월 갈릴레이는 20배쯤 확대하여 볼 수 있는 기구를 제작했다. 이때 그는 망원경으로 하늘을 관측하기로 결심하는데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별이 많다는 것을 깨닫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달을 조사하던 그는 달 표면이 지구에서처럼 산 지형으로 인해 왜곡되어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1610년 1월 그는 마침내 목성의 위성 4개를 관측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학설을 타도하기에 충분한 만큼의 관측이었다고 한다. 1610년 3월 갈릴레이는 『별의 메신저』에서 자신이 발견한 별, 달, 목성의 위성에 대해 기록했다. 라틴어로 기록된 이 책은 바로 다음 달부터 베네치아에서 발행되었다. 500부가 며칠 만에 동이 났다. 몇 주 만에 갈릴레이는 이탈리아 전역의 유명인사가 되어 전국의 학교마다 그를 모셔 가려 경쟁하게 되었다.

 

케플러의 새로운 천문학

1609년 정설보다 관측에 우위를 둘 것. 이것은 케플러가 「신천문학」에 반영한 신념이라고 한다. 이 저서에서 그는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의 운동을 설명하는 제1법칙과 제2법칙을 발표했다.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는 1571년 12월 27일 독일의 바일 데어 슈타트(Wail der Stadt, 현재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 있음)라는 도시의 루터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프로테스탄트 신학교에서 수학한 후 1589년 튀빙겐대학교에 입학하여 독일의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인 미하 엘 매스틀린의 강의를 수강하는데 매스틀린은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라는 새로운 체계의 지 지자였다고 한다. 이후 케플러는 목회자가 되려고 하지만 결국 오스트리아 슈 타이어마르크주에 있는 그라츠 신학교의 수학 교수직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종교적 신념과 코페르니쿠스적 사상으로 기소된 케플러는 1600년 그라츠를 떠났다.

그는 덴마크의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로부터 조수가 되어달라는 제안을 받고 프라하로 깄다. 젊은 시절의 결투로 잘린 코를 가리기 위해 가짜 수염을 달고 다녀 '황금 코의 사나이’란 별명을 가졌 던 브라헤는 독보적인 관측자였다고 한다. 그는 케플러의 연구에 필요한 중요한 자료들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1601년 브라헤가 사망하자 케플러는 황제 루돌프 2세 궁정의 황실 수학자가 되었다. 1609년 그는 「신(新)천문학」에서 다른 가설들과 함께 제1법칙과 제2법칙을 발표하 는데 그것은 행성의 운동을 책임지는 힘, 즉 자기력이라 표현되므로 신성한 힘이 아닌 물리적 힘으로서의 행성운동의 동력에 관한 것이었다고 한다.

 

1610년 케플러는 목성의 달이 4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별의 메신저와의 대화라는 저서를 통해 갈릴레이에게 지지를 보내는데 이 저서명에서 암시되는 『별의 메신저(Sidereus nuncius)』는 갈릴레이가 자신의 굴절망원경을 이용해 최초로 관측한 것들을 기록한 책이라고 한다. 1611년 케플러는 '위성(satellite, 라틴어 satelles에서 유래한 말로 '호위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목성의 달 4개를 가리켰다. 그리고 굴절망원경의 개발을 계기로 광학 저 서인 『굴절광학(Dioptrice)』을 집필했다.

 

우주가 '조화' 법칙에 따른다고 말한 케플러는 천문학과 음악을 연계시켰다. 1619년 출간된 「세계의 조화」에서 그는 각 행성에 하나의 악상을 결부시켰다. 이 행성들의 속도 변화는 음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음으로 표현되었다.

그가 1608년에 쓴 소설 「꿈」은 1630년에 그가 사망하고 4년 후 아들 루트비히에 의해 출간되었다. 당시로서는 장르를 분류할 수 없는 글이었으나 오늘날은 판타지 소설로 정의될 수 있다고 한다. 지구에서 달까지의 여행을 기록한 이 소설은 무엇보다도 코페르니쿠스적 사상을 대중에게 보급하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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