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관점들

1543년 르네상스 화가들의 원근법 도입이라는 혁명에 영감을 받은 폴란드 출신의 성당 천사
회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사망 직전 지동설을 발표했다.
중세를 지배한 세계에 대한 관념은 기독교의 천지창조 세계관과 일치하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관념이라고 한다. 태고부터 지구는 세상의 중심이라고 한다. 그 위에는 구(球)들이 있는데 그 안에서 행성들이 각자 원운동을 한다고 한다. 천상에는 완벽함이 존재한다. 행성들이 고정되지 않은 경로를 가진 것을 프톨레마이오스는 복잡한 기하학으로 설명했다. 중세 문화에서는 모든 것이 지구 중심적 세계관을 나타낸다고 한다.
물체와 그것이 있는 공간의 관계에 대해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 것은 바로, 콰트로켄토 (15세기 이탈리아 문예부흥기)의 예술가들이다. 수직적이고 위계적 조직에 있던 그들은 표현방식을 원근법에 따르도록 바꿨다. 당시 이탈리아에 체류 중이던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이 새로운 사상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세계관을 제안하는데 그것은 태양이 중심에 있고 그 주변으로 행성들이 조화 원 리에 따른 궤도를 그리며 돌고 있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문제가 있는데 이 개념에서 나오는 몇 가지 문제 들을 당대의 학자들은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논쟁이 열려 있었고. 이 논쟁은 다가오는 수 세기 동안 지속될 흔적을 남겼다. 어떻게 새로운 표현 체계를 기존의 지식과 조화되게 할 것인가? 세계는 정말로 무한한가? 이 모든 것이 심지어 신의 존재 마저도 의심하게 만드는 것인가?
코페르니쿠스는 고대의 선임자들보다 훨씬 완벽한 도구를 사용하 지도 않고 게다가 지중해 지역보다 천문학 관측에 불리한 기상 조건의 제약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슬람권 학자들을 통해 알려진 고대 천문학자들의 연구 그리고 르네상스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와 공간에 대한 새로운 개념 덕분에 코페르니쿠스는 과학적 도구를 이용해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라고 추측했다.
그는 행성, 별들의 위치 그리고 천체의 움직임을 수없이 관측했다. 그리고 태양일과 항성일의 차이를 명확히 밝혀냈다. 또한 정확성을 더 해 태양년의 길이를 정했다. 그가 얻은 결과들은 이슬람 세계의 선조 과학자들이 얻은 결과에 가깝지만 선조들의 결과가 더 정확하다고 한다. 진정한 혁신은 그가 태양을 세계의 중심에 놓고 지구와 행성들이 그 주변을 돌게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는 이렇게 별의 움직임, 행성들의 역행운동, 대양계에서 행성의 위치 그리고 행성의 공정 주기 동을 설명했다. 요약하자면 행성이 태양에서 멀리 있을수록 그 행성이 태양 주위를 완벽히 1회 돌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코메르니쿠스는 세자차운동 가설을 제시하는데 이것은 지구가 팽이처럼 축을 두고 움직인다는 것이라 한다. 이것은 놀랍게도 그가 천구들이 단단한 고체(수정)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인데 이 개념은 프톨레마이오스가 이미 폐기한 것이라 한다.
영원을 향하여

1600년 니콜라우스 쿠사누스에게서 영감을 얻은 조르다노 브루노는 만일 신이 영원하다면 우주 또한 영원하고 우주는 우리 세계와 똑같은 세계를 수없이 품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니콜라스 크렙스는 1401년 독일의 쿠에스에서 출생하는데 그 때문에 오늘날 알려진 이름은 니콜라우스 쿠사누스이라고 한다. 그는 부유한 하천 운수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법, 철학, 수학을 하이델베르크, 파도바, 퀠른에서 공부했다. 서양에서 교회 분리의 시련이 있은 후 카톨릭 교회는 권위를 회복하려 애썼다. 쿠사누스는 교황 편에 섰다. 그 모든 노력의 보상으로 그는 1448년 추기경이 되었다. 10년 후 그는 고전 연구가였던 교황 비오 2세의 임시 대리직을 맡았다.
신학자이자 카탈로니아 철학자 라몬 유이의 글을 열독하던 쿠사누스는 영원을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될 지적 방법을 만들어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세계라는 기계는 그 중심이 어디에나 있으며 주변은 어디에도 없다. 신이 주변이자 중심이며 신 역시 어디에나 있으며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주장한 세계의 개념은 매우 철학적이지만 다가올 과학 혁명의 초석이 되었다. 그가 놓은 초석 이란 그때 까지만 해도 신의 전유물이었던 '한정되지 않고 닫혀 있지 않은' 세계의 개념이었다.
쿠사누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닫힌 우주 개념과 단접하고 현대 우주생성론의 무한한우주를 주장했다. 신은 무한하다는 이미지를 가진 그에게 우주는 끝이 없었다. 따라서 세계는 한정되지 않은 구이며 구의 중심은 어디에나 있고 구의 주변은 어디에도 없다고 한다. 지구는 다른 천체들처럼 움직이고 그 자체로 완전한 별이 되는데 그럼으로써 하늘과 천체를 지구 위에 놓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이론을 반박했다. 게다가 그는 위와 아래를 말하는 것이 천문학에서는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더 흥미로운 점은 그의 다원적 세계라는 개념 안에 여전히 신성한 영원의 이미지가 있다는 점이라고 한다. 쿠사누스는 우주에는 별만큼 많은 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무엇이 유한과 무한을 나누는지 아는 사람은 '무지한 학자이다. 그가 보기에 지구도 더 이상 무한히 작은 천체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그의 형이상학적 질문을 이렇게 바꾸어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 유한한 성질의 존재들이 어떻게 무한한 성질의 개념을 파악할 수 있었을까?
1548년 이탈리아 나폴리 근처 놀라에서 출생한 조르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는 성 도미니크회 수도사이자 철학자로 평생 교권과 갈등 관계에 있었다고 한다. 도미니크 수도원에서의 수련 시절부터 신성한 삼위일체와 성모 마리아 숭배 같은 교리에 반대했다. 이단 재판에 휘말릴 위기를 느끼자 그는 1576년 수도사복을 벗어 던지고 도피했다. 30년 가까이 방황하다가 베네치아에서 로마의 종교재판관에게 넘겨진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반대하고 코페르니쿠스적 체계에 동조했다. 또 지구는 스스로 하는 자전과 태양 주위를 도는 공전이라는 2가지 운동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보다 한술 더 떠 균질성과 등방성을 가진 우주가 끝없는 공(空)에 둘러 싸여 있고 모든 방향으로 뻗어 나가며 우주의 중심은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을 지지했다. 니콜라우스 쿠사누스의 영향을 받은 그의 우주관은 무한함과 세계의 다원성을 향해 열려 있었다. 신이라는 무한한원인의 무 한한결과인 우주는 반드시 우리 세계와 비슷한 무한한세계를 내포했다. 즉 태양처럼 각각의 별은 우리는 모르지만 신은 아는 또 다른 세계의 중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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